원경환 _ 雜記 Different Records

0
339

   2020. 10. 09. ~ 10. 26.

* 전시 마지막 월요일은 오픈 합니다.

  

서울일삼, 2020.10. 9. – 26
원경환 <잡기(雜記), Different Records>
새로운 물질의 인상(印象)                                                        홍지수_미술학 박사, 미술비평

작가는 물질을 주무르고 매만지면서 모종의 경지에 다가가는 것을 자신의 일이자 즐거움으로 간주하는 자다. 작가는 물질을 빌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형상, 자신이 타인에게 보여주려 하는 바를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상태로 드러낸다. 그러기 위해선 작가는 이 지구상 물질들 중에 자신의 성정과 취향 그리고 하고자 하는 바에 가장 합당한 물질을 골라야 한다. 나아가 그것을 다루기 위한 기술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작가들이 묵직하고 비린내 나는 땀의 노동으로 재료를 다듬고 자신이 상상한 혹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형상으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원경환은 재료에 형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물질을 깎고 덧붙여 자신이 원하는 형태를 도출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형태, 질감, 색을 지닌 물질 혹은 사물을 주변에서 찾는다. 시간을 두고 수집한 재료와 오브제들을 조합한 후 최소한의 제작과 가공을 거쳐 만든 결과물을 만든다. 그것이 장소에 따라 오브제가 되고 설치가 된다. 재료는 새 것보다 목금토(木金土)의 성질을 지닌 자연재 중에서 자연스러운 물성과 세월감이 강조된 것들을 주로 선호한다. 그는 물질이 불, 물, 공기 등과 만났을 때 혹은 성질이 다른 물질과 물질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의 양상을 ‘물질의 인상(印象)’으로 지칭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오행상극(五行相克)의 관계로 이해하고 명징하고 간결한 이미지로 보여주었다. 이 모든 작업은 작가가 자신의 의지나 개념을 우선하는 행위가 아니라 물질 혹은 발견된 오브제가 지금의 흔적을 가지기까지 거쳐 온 시간과 과정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것이고 사물의 피부에 스며들어있는 독자적인 표정과 지문을 탐닉하고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원경환의 작업은 첫째, 인위적 변형보다는 재료가 지닌 자연스러운 물성과 마티에르를 중요시하고 둘째, 미니멀한 형태를 띠며 셋째, 동어반복의 설치 형식이 주를 이뤄왔다. 이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최소한의 요약과 묵직하고 강건한 힘을 추구한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그의 작업은 산업재나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보아 사물을 재구성하고 그것의 존재방식을 설명하고자 한 ‘모노하’ 혹은 예술 외적 요소를 표현하거나 상정하지 않고 작품의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미니멀리즘’과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말했듯, 어떤 미술 사조나 서사를 앞세워 물질에 형상과 개념을 작품에 주지시킨 바 없다.

그가 미술에 대한 혁신이나 탈공예의 개념을 꿈꾸지 않았더라도, 재료와 수공에 대한 의미와 비중이 남다른 공예계의 분위기와 인식 속에서 그가 재료를 깎아 내거나 살을 붙이는 전통 방식 대신 ‘오브제 사용’을 재현의 방식으로 선택해 작업해왔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삶의 이곳저곳에서 마주치고 여기저기 흩어진 것들 중에 자신의 성정, 취향, 감각에 맞는 것들에게 눈길을 주고 인연이 닿은 것들을 선별해 조형의 재료로 삼는다. 여기서 대상이 자연재인지 공산품인지, 누가 만들었거나 소유했었는지, 기능성의 유무 그리고 재료의 이디엄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작가 자신이 느끼는 형태와 질감, 색, 다른 것과의 조합 가능성 등에 대한 작가의 극히 주관적 ‘재미’ 내지 ‘흥미’가 선택의 기준이고 작업의 동기다. 그것들을 시시때때로 이리저리 조합하며 흥미로운 형상, 상태, 관계가 될 때까지 시도를 거듭하는 것이 그의 작업방식이다. 즉, 주변에 대한 성찰과 유의 깊은 관심과 호기심, 감각이 곧 작업의 내용이자 아이디어, 자신만의 색깔이 되었다고 본다.

재료와 재료, 혹은 발견된 사물간의 조합은 태생과 재질, 세월 묵음 다른 것들의 결합이기에 어울림이나 완성도가 매번 작가가 원하는 바와 부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튀는 것,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지우고 감추고 덜어내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人爲)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는 재료가 본디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두 번째는 작가의 감각과 사유와 부합하는 색, 질감, 형태의 범주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모노톤의 깊은 색채, 반/무광의 고급스러운 광택, 단순한 기호학적 형태, 세련된 절제미 그리고 구체적 형태보다 물질 자체에 주목하는 ‘스타일’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원경환의 작업을 힘 있고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흙을 주재료 혹은 구심점으로 사용했던 전작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재료, 오브제를 수용하려는 작가의 새로운 조형 의지, 실험정신을 읽을 수 있다. 전작보다 발견된 오브제 즉, 도자보다 타재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물질의 인상(印象)’ 혹은 물질과 물질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고 결합하는 작가의 즉흥성과 아이디어가 한층 집중되고 부각되는 느낌이다.

이번 전시에는 <잡기(雜記), Miscellaneous records>(2013)에서 시도했던 나무 판넬을 이용한 매체 확장성이 유독 돋보인다. 작가는 세월 오래 묵은 침목판재의 거친 표면을 둥근 단면의 도구를 반복적으로 두드려 패턴을 만들었다. 수직으로 내린 빗방울들이 수면위에 원의 파동처럼 나무의 표면에 수직의 반복적, 물리적 힘이 원형의 파동을 만들었다. 파동의 중심마다 수면을 비집고 핀 연꽃마냥 붉은 플라스틱 꽃이 피었다. 나무 위에 유성도료를 덧발라 추상 회화를 시도한 것 역시 오브제아트가 간혹 처할 가벼운 시각적 유희에 함몰되지 않고 한정된 재료, 매체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로 보인다. 표면에 색을 칠해 면을 분할하고 선을 긋고 오브제를 덧붙이는 모든 행위는 캔버스의 평면 혹은 조각의 부조와 다른 새로운 화면 구성을 위한 시도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른 화면이기 이전에 고유의 부피를 지닌 입체물이며, 물질 덩어리다. 작가는 톱으로 단면을 가르고 일부를 거칠게 뜯어내 매끈한 아크릴 물감 층 밑에 숨겨져 있던 거친 결을 드러내 이를 증명한다. 톱질을 가할 수 있는 것은 흙이나 금속과 달리 나무가 무르기 때문이고 결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작가는 성질이 단단한 금속은 가공대신 공기 혹은 타물질에 의한 화학적 변화에 의한 색상과 질감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금속의 표면은 오랜 시간 동안 공기나 빛에 닿으면 색이 변화하고 녹이 난다. 붉은 색에서 녹색, 청색, 먹색에 이르는 미묘하고 다양한 모노톤 색채는 작가가 어떻게 포착하고 도려내는가에 의해 회화적 화면으로 전환된다. 우리는 속이 패이고 뜯겨나간 목재의 표면에서 그리고 금속의 미묘한 색과 질감의 변화 속에서 각 재료가 자신에게 임한 시간과 물리적 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생존했는지 헤아려본다. 평소 헤아리지 못했던 질료와 사물의 이면을 본다.

원경환의 작업은 다양한 재료를 수용하지만, 공예의 원재료-목, 금, 토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바, 그 안에 숨어있는 가능성 있는 형태를 도출하고 현실화하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재료의 물성을 다듬되 근본을 범하지 않으며 질료의 숨결과 성질이 가장 잘 드러날 때를 기다려 만든 오브제는 어떤 서사보다 강력한 제 존재감을 지닌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재료가 지닌 상반된 속성을 잘 이해하고 울리는 방법을 감각적으로 재료에 적재적소 적용할 때만 가능하다.

기억해보건대, 원경환은 오랫동안 흙을 재료로 삼아 그것을 어떤 표정을 지닌 물질로 보여주고 그로인해 도자예술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노력해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흙 혹은 도자예술에 대한 특정 재료 및 매체에 대한 애호라기보다 한 작가가 여러 재료의 속성과 기질을 탐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체질과 가장 부합하고 손쉽게 접근 가능한 재료를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한 작가가 특정 재료를 오랫동안 사용하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재료의 속성이 작가의 성정과 부합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외부의 힘이나 접촉의 흔적을 고스란히 내부에 축적하고 기억하는 흙의 속성 그리고 고온의 불 속에서 검은 그을림을 입은 흑도(黑陶)의 남다른 깊이와 자연스러움은 그만큼 작가의 성정과 미적 감수성, 체질과 부합했기에 오랫동안 작가의 조형언어로 사용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흙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비중은 달라졌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흙을 사용하지만, 흙을 포함한 질료, 오브제 그리고 방법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접근은 한층 넓어지고 유연해졌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재료와 방법의 확장성을 통해 조형세계의 반경을 한껏 넓히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것 같다. 이것은 특정 장르나 스타일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물질들이 지닌 가변적이고 활성적인 힘과 표정을 달리 느끼고 발견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의미할 것이다. 형태를 재료가 이미 가지고 있는 소명 속에서 찾고 물질적 소명을 형상으로 구현해온 작가의 오랜 감각이 더 넓은 곳을 향하고 기꺼이 감당할 만큼 농밀해지고 원대해졌다는 그런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