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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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6-17/ 긴 설치, 짧은 전시

2021년 서울일삼의 첫 전시는 좀 새로운 형식으로 출발합니다.전시 마지막날을 오프닝으로 하고 그 때까지 참여작가들은 자유롭게 작품설치를 진행 합니다. 관객들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전시장에서 동료작가 또는 지인들과 교류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스톤 김 작가노트
일전에 그동안 모든 작업의 원본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날려 먹은 적이 있다. 어이없게도 백업을 마음먹은 시점에 생긴 일이어서 더더욱 황당하고 후회스러웠다. 머릿속에 담겨있던 몇 개의 이미지들이 스르륵 지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하드디스크를 살렸고, 그 안의 파일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2,606개의 폴더 168,471개의 파일. 물리적으로 생산된 200여점의 작품들을 포함해 디지털 파일로만 존재하는 이들을 돌아보며“원본”의 근본적인 의미와 쌓여온 자취의 영향력을 스스로 되새김 해보고자 한다. 이번에 설치한 세 작품 중 마지막 플라타너스 잎 이미지가 최근에 찍은 사진이고, 나머지 두 장은 한 10년 전에 찍은 이미지이다. 10년 전은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라 막 찍었다 생각했는데, 막상 복구된 이미지를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봤더니, 이게 지금까지 연결이 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이번 전시의 풍경은 나의 작업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이라는 매체 특성상 준비 과정이 물리적(?)으로 표현되기 어렵고, 또 그 과정에서 생산된 테스트 프린트들 자체도 하나의 원본 또는 진본임에도 선택받지 못하면 폐기되고 마는 일련의 과정을 얘기해보고 싶기도 했다.

정희우 작가
도로 표지를 비롯한 도시의 기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온 정희우 작가는 이번에도 도로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 모양의 직진 표시 기호를 전시장에 들여왔다. 이전에 주로 ‘탁본’을 통해 실물 그대로 종이에 떠오거나 붓으로 직접 그렸다면, 이번에는 펠트천으로 화살표 모양을 오려 유연한 형태로 보여준다. 도로 바닥에 두텁게 도장되어 견고하게 존재하며 우리에게 조용하고 강력한 명령을 던지는 화살표를 부드러운 오브제로 만들었고, 설치도 직선이 아닌 곡선의 형태로 자유롭게 흐르도록 한 것이다.

이현민 작가는
전시장 한쪽 벽에 일기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그린 페인팅 두 점과 간단하게 배접된 수묵화 열두 점을 걸었다. 작가에게 이런 그림들은 어설프게 정리한 글보다 훨씬 솔직하고 명징한 자기 고백이 된다. 그림이 휴지조각처럼 초라하고 아무 쓸모 없이 느껴질 때, 스스로 답하듯 그린 그림은 맨 처음 그림을 그리며 설레던 마음을 기억나게 하고, 어느새 마법처럼 어둡고 우울한 길에서 조금씩 풀려나게 만든다. 그리고 배가 고파지면 간소하게 음식을 하고, 무언가 견딜 수 없는 느낌이 들 때 작업실을 청소하는 삶의 행위들이 그리기의 행위와 교차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화가’라고 생각한다. “연속되는 삶의 장면과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인식하면서도 그 사이의 단락과 틈새에서 발생하는 환영과 신호를 잘 감지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과 판타지 혹은 현실과 그리기가 공존하면서 지속 가능해진다”

최성임 작가에게
작업의 행위는 매일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손길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마음가짐과 비슷하다. 그는 일주일 동안 매일 갤러리를 오고 가며, 공간을 익히는 동시에 공간에 옷(작업, 무늬, 덮개, 기둥)을 입히며 작품 <간격>을 완성했다. 스킬자수의 털실, 도일리의 익숙한 패턴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소재들이 내포하고 있는 작가를 둘러싼 따스함이나 정서적인 밀접함, 관계의 친밀함 등이 차가운 금속, 투명한 아크릴, 균일한 망과 만나 불편하고 낯선 결합이 되었다. 여기에서 작가는 두 가지 재료의 특징과 이미지가 충돌하는 동시에 연결되며 생기는 ‘틈’과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고, 나아가 어떤 잠깐의 전환을 상상하고자 했다
이 전시는 나에게 2020년의 마지막 전시이기도 하고 2021년 을 여는 첫 번째 전시이기도 해서 특별하다. 그들과 2013년부터 8년을 만났으나 여전히 낯설고, 이번으로 일곱 번째 그룹전시를 하나 여전히 모르겠다. 친목이라기에는 멀고, 프로젝트 그룹이라기에는 허술하다. 그럼에도 또 전시로 맞춰본다. 내게 예술 동지와 술 한 잔과 한 끼 식사가 절실할 때 함께 했고, 수많은 어색한 전시 오프닝을 함께 했고, 작가로서 초기 성장과정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 밤을 새는 동안 저 멀리 창밖의 불 켜진 집을 발견하며 친밀감을 느끼는 것처럼,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그들을 상상하며 지나온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51프로라는 덩어리로 일곱 이라는 축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전시로 이렇게 보여지고 드러나서 참 좋다.

이지송 작가는
2층 공간 전체를 이용해 영상 이미지와 공간 표면의 만남에서 오는 미묘한 변조를 시도해보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질감의 벽과 천장으로 이루어진 서울일삼 2층 공간의 선택은 매우 적절했다. 이곳에서, 공간 표면이 지니고 있는 질감이나 색이 영상과 결합하면서 이미지가 투사되는 공간이 입체로 전환되는 작가의 흥미로운 시도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