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MORPHOSIS – 개별자들의 공간여행 09/15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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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 김민주, 김은정, 김일완, 정동균, 정수진, 박선영, 박수진, 신승민,
                  정준영, 조석현, 최대규, 백경민, 윤혜진, 은소영. 최신혜, 최지은,
                  최호준, 송효주, 이정헌, 이지영, 함연주, 황지혜


도예, 다방(茶房)으로의 귀환

정다방. ‘정’의 의미가 사랑과 인정을 뜻하는 情인지, 멈추다 혹은 머무르다를 뜻하는 停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 한 음절의 단어가 주는 어감은 ‘다방’과 결합되어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한 켠에 30여 년간 위치했었다고 알려진 이곳은 서울남부지방법원 영등포등기소 앞에 위치한 관계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운영되다가 10여 년 전 법원이 이전하면서 그렇게 또 하나의 지역적 역사로 사라질 뻔한 곳이다. 그런 정다방의 이름을 유지하고, 옛 간판을 소장하면서 새로운 공간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 바로 문래동 대안공간_정다방프로젝트이다. 문래동은 한국 산업화 시대 철강단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가 최근 몇 년간 저렴한 임대비와 독특한 지역적 분위기에 이끌린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주한 곳으로서, 꾸준한 자생적 활동들에 힘입어 서울시와 지역사회에서도 이를 지원하는 등 예술지역구로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정다방프로젝트는 이러한 지역적 맥락 속에 30년이라는 역사, 그리고 ‘다방’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현재 이루어지는 예술적 활동 등, 이 모든 것이 함께 얽혀있는 하나의 코드로 볼 수 있으며, 이번 ‘도예, 다방(茶房)으로의 귀환’ 展은 이러한 맥락을 응시하며 침투하고, 재해석하며 재구성하는 것에 의미를 가진다.

그전에 우리는 다방이라는 문화적 코드에 대해 먼저 정확히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현재 향유하고 있는 90년대 이후 카페 문화가 등장하기 이전에 반세기 이상을 풍미했던 다방 역사의 변화를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과 재해석의 여지들이 많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살림지식총서, 장유정)에 따르면, 한국의 차 문화는 이미 고조선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가장 오래된 유물인 신라 시대 ‘한송정(寒松亭)과 통일신라 시대 최고의 다실인 다연원(茶淵院)을 통해 그 시작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차 문화는 당시 당나라와의 문화교류 및 높은 외교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도자사와의 맥락과도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차를 마시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의 다방이라는 용어는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했는데, 당시 다방은 나랏일을 주관하는 국가 관사였고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며 외국 사신들의 접대가 이루어진 공간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구한말에 이르러 커피가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고종이 덕수궁에 정관헌(靜觀軒)을 지어놓고 이를 즐긴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화의 바람을 타고 일본인이 인천에 설립한 한 호텔에서 처음 커피가 판매되었으며, 근대 문물을 경험하고 돌아온 해외유학파 지식인들과 문화인들,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유럽식 살롱 문화를 다방을 통해 실현해 보고자 했던 것은 문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60~70년대 다방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다방은 손님들 간의 전화 연락과 메모 등을 통한 의사 전달의 중요한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였고, 대중들의 응접실과 대기실, 휴식처 등의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를 지나 80년대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오락과 유흥을 중심으로, 사회 환경 변화와 경쟁 체제 속에서 종래의 전통 형태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의 분화시기를 겪었으며, 90년대에는 새롭게 등장한 카페에 몰려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다. 80~90년대에 성장하며 카페 문화에 익숙한 우리 세대에게 ‘다방’이란, 근현대 역사에서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와 향수, 예술적 공간이자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서의 기존 성격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의 사랑방, 지방에 위치한 작은 찻집, 그리고 티켓다방 문화로 인한 퇴폐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들로 더욱 강하게 인식되는 듯하다.

다시 ‘정다방’으로 돌아와 지난 30년 이곳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앞서 이야기한 80년대 이후 다방의 분화와 쇠퇴기 속에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었을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대학가 앞 젊은이들의 오락과 유흥을 위한 다방도,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토론을 하거나 작품을 써내려가던 다방도 아닌 이곳은 젊음과 낭만이 깃들어 있는 다방의 모습을 상상하기엔 조금 역부족일 수 있겠다. 우선 이 다방의 존재는 서울남부지방법원 영등포등기소 앞에 위치한 관계로 법원과 등기소를 방문하는 이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1969년 건립된 영등포등기소는 즉결심판소의 기능을 함께 겸하는 청사였다고 하며, 즉결법정은 주로 벌금과 구류 등 가벼운 처벌을 부과 받은 이들이 심판을 받았던 법정이다. 사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마냥 즐거운 일로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골치 아픈 민원들을 항의하고, 기다리고, 해결하는 서민들의 애환과 고충이 절실히 녹아있는 공간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문래동이 서울 지역 내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남권 지역의 오래된 철강단지인 점을 함께 감안한다면, 어쩌면 공간의 성격 자체가 오락과 여흥, 문화를 위한 즐거운 공간이 아니었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어찌되었던, 개개인의 오래된 크고 작은 사건과 기억들을 품고 있는 공간들은 그 역사성과 장소적 맥락에 의해 수많은 레이어들로 촘촘하게 얽혀있는데, 이것들을 관찰하고 재해석하려는 데에는 정확한 목적과 그것이 생성하는 의미가 어느 정도 예측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정다방프로젝트의 경우 오랜 기간 이 곳에 거주한 누군가의 적극적인 침투로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들을 획득했으며, 지역 공동체가 가진 공동의 기억으로서 논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제공하고 있고, 이것을 예술적 맥락 안에서 풀어내고 실현시키려는 의도들로 종합된다. 이번 ‘도예, 다방(茶房)으로의 귀환’ 展에선 이러한 정다방의 특성을 토대로, 특히 날 것 그대로의 노출 콘크리트 구조 위에 그 기억들을 작품에 투영하고 재해석하기를 권한다. 사실 전시공간의 유행을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현재는 과거 모더니즘 시대의 살롱과 화이트 큐브의 형태보다는 유휴 공간의 모습 그대로를 최대한 유지해 공간을 변모시키며, 그것이 주는 아우라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는 추세이다. 작가들이 이런 특성을 영리하게 활용해 작품을 돋보이게도 할 수도 있지만, 공간의 아우라에 압도당하거나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 사이에서 그 힘의 균형을 맞추며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 단연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

여기까지 우리가 공통적으로 확보한 키워드들은 지역성, 역사성, 장소성, 공간성 등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끊임없이 중요한 화두로서 논의되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특히 로컬과 지역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그 가치를 발하게 되면서, 이러한 시도 자체가 많은 인정을 받고 있으며 예술을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서 발현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칫하면 그 맥락에 갇혀버리게 되는 현상도 일어날 수 있으니, 이것을 경계할 필요성은 있겠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전시의 주요 질료인 ‘도자’라는 매체가 한국 미술사의 주류이자 문화 명맥을 이어온 중요한 분야이며 특히 차 문화, 다방이라는 그 연원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매체성’ 이라는 더욱 단단한 키워드를 공유하고 주목해야 한다. 전통적이지만 동시에 현대적인 도예의 매체성, 물질성을 적극 활용한 여러 성향의 작품들이 비정형적인 공간의 각 성격과 특성들을 활용하여 조화를 이루거나 대립하거나 혹은 압도하거나, 공간 내에서 그 자체의 힘들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도예라는 재료의 매체성으로 조금 더 침투해 보자면, 우리는 아주 먼 과거로 회귀한다. 인간의 순수 조형물은 동서를 막론하고 흙이라는 자연의 기본 매체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양의 경우 차 문화와 함께 왕실과 귀족들이 향유하는 전통 도자문화로 발전했다. 한국미술사에서 도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이는 불교미술과 회화와 더불어 어떤 장르보다도 주류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현대로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순수 예술이 우위를 점하게 되고, 개념적인 작업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여타 공예 분야와 마찬가지로 현대 도예 역시 순수조형에 대한 갈구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노력들,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혼란, 대립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그것들이 첨예했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현재는 다시 공예 자체에 대한 재조명과 변화된 인식론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예 스스로의 자아 분열과 변화, 매체성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이 필요하며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도예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각기 다른 작업을 하는 여러 성향의 작가들이 모여 이곳 정다방의 또 다른 모습을 꿈꾼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이 확실하게 안고 가는 것은 단일한 형식의 완성된 오브제만을 단지 공간 안에 위치시키고 끝내버리는 천편일률적인 전시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이상을 뛰어넘어 또 다른 시도를 하려는 목적과 고민들이 요구되었고, 그것이 실현된다. 지금까지 언급된 여러 키워드들에 대한 재해석과 개별적인 방법론을 통한 접근들, 무엇보다도 공간 내에서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영역을 선택하고 변화시키는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담론의 현장이 펼쳐진다. ‘공간의 단단한 구조와 뼈대, 표피를 아우르는 과감한 인스톨레이션, 혹은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공간 내에 설치되어 있는 오브제들, 뒤집어진 물질성과 매체성에 대한 실험들, 비정형성과 대립 지점에 있는 정형성의 재발견.’ 생경하게도 ‘차를 마시는 공간’ 이라는 다방의 원래 의미를, 노출 콘크리트 바닥 한가운데에서 재해석해 내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시도들이 현대 도예와 공예가 향하고 있는 어딘가로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이 투영되고 교차하는 그 지점이 이 전시를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